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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생태계 뒤흔드는 ‘도토리 실종사건’… 짐승들이 뿔났다

해기^^ 2010. 11. 19. 22:51

생태계 뒤흔드는 ‘도토리 실종사건’… 짐승들이 뿔났다

[2010.11.18 18:23]   


너흰 배추 파동? 우린 도토리 파동!

“도토리가 금값이에요. (도토리 한 알을 바위에 올려놓으며) 이게 얼만지 압니까? 요즘 1만5000원에 거래됩니다. 특히 지리산 도토리 생산량은 지난해의 30∼40% 수준입니다. 장관, 어쩔 겁니까?”(반달가슴곰 의원)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게 도토린데 올해 이상기온 때문에 그렇습니다만, 내년에는 별 문제 없을 것이고, 아 올해는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시면 중국산 도토리도 수입하고….”(농림수산식품부 한우 장관)

“중∼국산?! 인간들이 중국 배추 수입했다 처치 곤란 겪는 거 못 봤어요? 이러니까 생계형 절도가 증가하는 겁니다. 곰이 그깟 인간들 양봉장에 꿀 따 먹으러 가는 세상이에요. 지리산 사는 우리들은 멸종위기종이니만큼 다른 데보다 신경 써 줘요!”(반달가슴곰 의원)

“어이! 지역구가 지리산이라고 자기 지역만 챙기나? 지난달 7일엔 부산 당감동 편의점 뒤지다 내 친구가 총에 맞아 죽었어! 멧돼지한테 우선 도토리를 싸게 공급해야지. 동물이 경우가 없어, 경우가. 킁킁.”(멧돼지 의원)

18일 지리산 천왕봉 해발고도 1085m 국정감사 현장. 멧돼지와 반달가슴곰 의원이 ‘도토리 파동’ 해결 방안을 놓고 언성을 높이다 서로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멧 의원과 반 의원 외에도 카메라 플래시를 겨냥한 의원들이 각 지역 도토리를 한 움큼씩 가져와 국감 현장은 도토리로 넘쳐 났다. 도토리를 구하지 못한 서민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하나둘씩 인가(人家)로 피난을 가는 가운데 국감 현장에서만큼은 도토리 풍년이었다.

지리산=다람쥐 기자 daramG@animal.co.kr

그 많던 도토리, 다 어디로 갔을까

야생동물 세계에 국정감사가 있다면 이런 기사가 쏟아지지 않았을까.

봄철 이상 저온과 여름철 집중호우로 지난 9, 10월 ‘배추 파동’이 일어 배추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사람들이 ‘배추 전쟁’을 겪는 동안 야생동물들은 ‘도토리 파동’을 겪었다. 올해 도토리가 흉년이다. 보통 9, 10월에 열매가 성숙해 땅에 떨어지는 도토리는 올해 유난히 제대로 여물지 못해 쭉정이 상태에 머물렀다. 이상기온이 야생동물의 주식마저 앗아간 것이다. 공주대 생명과학과 유영한(45) 교수는 “원앙, 어치, 다람쥐, 반달가슴곰 등 야생동물에게 도토리는 사람에게 쌀과 같은 존재”라며 “동물들의 월동 준비가 수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먹이가 부족한 야생동물은 민가에 출몰했다. 민가에서 먹을 것을 훔치거나, 도심에서 난동을 부리거나, 갑작스럽게 도로에 나타나 승용차와 부딪혀 죽었다.

“곰이 9월쯤 되면 산에 먹을 게 없어요. 지난해에도 우리 농가에 곰이 내려와서 꿀을 10여통 빼가더만. 걔네들 8, 9월쯤 되면 농가를 한 바퀴 도는 것 같아요. 곰이 왔다 간 건 보면 딱 알아요. 다른 동물은 그 자리에서 먹지 꿀통을 안 가져가는데, 곰은 그 자리에서 일부 먹기도 하지만 몇 십 미터씩 벌통을 가져가서 먹거든.”

한봉(韓蜂·토종꿀) 농장을 운영하는 김용협(56)씨 얘기다. 지난 9월 9일 전북 남원시 중군리에 있는 김씨의 한봉 농장에서 벌통 7개가 사라지거나 망가졌다. 절도범은 멸종위기종인 천연기념물 329호 반달가슴곰. 피해금액은 약 600만원이었다.

반달가슴곰이 올해 민가를 찾아 피해를 입힌 사건은 9차례였다. 벌통 훔쳐 먹기 6건, 사과 따 먹기 1건, 장독대 훼손 1건, 시멘트 포대 훼손 1건으로 집계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도토리가 부족한 반달가슴곰이 민가에 출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리산에 인접한 전북 남원시, 전남 구례군, 경남 함양·산청·하동군 128곳에 전기 펜스를 설치했다.

멧돼지 출몰은 인간에게 더욱 위협적이다. 지난달 24일에는 충북 음성군 음성읍 36번 국도에서 멧돼지가 김모(45)씨가 몰고 가던 승용차와 충돌해 김씨가 그 자리에서 숨졌다. 지난달 7일에는 부산 당감동 한 편의점에 멧돼지가 마치 손님처럼 문을 열고 들어가 계산대로 달려들었다. 놀란 직원은 자리를 피했고, 80㎏에 달하는 멧돼지는 편의점에서 난동을 부리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올해 전국에서 멧돼지가 도심에 출몰한 사건은 21차례였다.

국립공원관리공단도 도토리 지키기에 나섰다. 지난달 14일부터 국립공원 방문객이 도토리 등 식물 채집을 할 경우 과태료 10만원을 부과하고 있다. 한창준 환경관리팀 계장은 “이제껏 도토리 채집 행위를 할 경우 고발 조치하는 데 그쳤지만 올해 도토리 결실률이 절반도 안 돼 과태료를 부과했다. 소량 채취도 봐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도토리, 누구냐 넌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등 참나무과의 열매인 도토리. 다들 “산에서 도토리 찾기가 옛날보다 힘들다”고 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줄었는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양두하 복원과장은 “지리산 지역을 표본 조사한 결과 지난해에 비해 도토리 결실량이 30∼40% 수준이긴 하다. 그러나 지리산 내에서도 지역마다 결실량 편차가 크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구체적이고 분석적인 수치라고 말하기 힘들다”고 했다.

도토리 생산량 집계도 사실상 없다. 산림청은 임업통계연보에서 도토리 등 임산물 생산 실적을 매년 발표한다. 하지만 이 또한 도토리 결실률이 아니라 유통되는 채집량 기준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도토리 채집량을 측정해 산림청이 취합하는데, 지역마다 측정 방식이 제각각이라 신뢰도는 떨어진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서 조사한다. 유통하는 이들이 됐건, 대규모 채집상이 됐건 각 지자체가 전화·방문 조사를 하면 산림청이 총괄 집계한다.”(산림청 정보통계담당관실 관계자)

“대규모 채집상은 집계 과정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주민들만 주로 접촉하니까. 집계 방식은 표본조사다. 지역 주민 100명 중 10명을 접촉했는데 1㎏ 채집한 걸로 파악되면, 이 지역에서 채집된 전체 도토리 양을 10㎏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화천군청과 각 면사무소 직원이 조사를 진행한다.”(강원도 화천군 산림방재과 관계자)

“화천군청에서 도토리 생산량을 집계하라는 공문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사내면은 도토리 집계 안 한다.”(화천군 사내면 관계자)

“현장 조사가 원칙이지만 사람들을 모두 만나는 건 불가능하다. 면사무소 직원이 이장님들에게 묻는 방법으로 조사한다.”(경기도 김포시 공원녹지과 관계자)

산림청은 ‘전수조사’를 표방했지만, 지자체는 표본조사를 했다. 표본조사의 대상이 되는 ‘샘플 집단’이 누군지도 지자체마다 달랐다. 어쨌든 산림청 통계상으로도 2006년 102만4599㎏이었던 도토리 채집량은 매년 감소해 지난해 60만6733㎏을 기록했다. 올해 통계치는 현재 집계 중이다.

도토리거위벌레의 공격

도토리를 맺는 참나무과는 다른 나무에 비해 풍년과 흉년 격차가 크다. 이런 탓에 2, 3년마다 도토리 흉년이 들 때면 해거리의 한 현상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도토리 박사’ 유영한 교수는 도토리가 지속적으로 감소한다고 강조했다. 참나무를 공격하는 도토리거위벌레가 증가함에 따라 도토리 결실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흉년이 와도 2, 3년 지나면 도토리가 많이 나오니 다들 걱정 없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 도토리 생산량 수치가 제대로 있나요? 사람도 도토리를 먹지만 대부분 중국산 도토리묵이죠. 도토리는 야생동물의 주요 영양 공급원인데, 결실률이 떨어져도 별로 걱정을 안 해요. 도토리가 감소하는 이유요? 여름에 산에 가면 참나무 가지가 마치 전동 커트기에 잘린 듯 땅에 무수히 떨어진 것 보셨습니까? 비밀은 거기에 숨어 있어요.”

바로 도토리거위벌레의 짓이다. 도토리거위벌레는 성숙하지 못한 도토리에 알을 낳은 뒤 가지를 잘라낸다. 어치나 다람쥐가 참나무 가지를 자르기도 하지만 도토리거위벌레는 마치 전동칼로 자른 듯 잘린 단면이 매끄러운 게 특징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 번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벌레는 딱정벌레류다. 등이 딱딱하기 때문에 해충약에도 강하다.

유 교수는 서울 관악산과 남산, 충남 공주 등 세 지역에 서식하는 신갈나무 도토리 결실률을 표본조사했다. 2005년에 충분히 익어 떨어진 성숙한 도토리는 면적 1㎡당 33개. 2006년 41개로 증가했지만 이후 35개, 39개, 28개, 27개로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신갈나무는 참나무과의 약 90%를 차지하는 대표 수목이다.

“도토리거위벌레가 파고들어가 알을 낳은 도토리는 매년 2∼5%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도토리는 미성숙 상태로 땅에 떨어지기 때문에 전분이 부족해 동물이 먹질 못해요. 문제는 도토리거위벌레의 서식지가 점차 넓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98년에는 지리산 해발 800m까지 분포했는데 지난해 조사했을 때는 1000m까지 올라갔어요. 한라산도 2001년 해발 700m에서 지난해 900m로 넓어졌고요.”

유 교수는 도토리거위벌레 증가 원인으로 지구온난화를 지목했다. 겨울철 땅속 8∼10㎝(낙엽층 포함)에서 동면하는 도토리거위벌레의 애벌레는 날씨가 따뜻할수록 생존율이 높다. 산림청은 그러나 소나무재선충병, 솔잎혹파리 등 9개 주요 해충을 제외한 나머지 해충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제 지침을 지방자치단체에 내리지 않는다.

경기도 산림과 관계자는 “도토리거위벌레와 관련해서 시·군에서 보고 올라온 게 없어요. 그냥 기타 해충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별도로 통계를 내지 않고, 오만 벌레 다 합쳐서 기타 통계를 내요. 다른 시·도도 그럴 겁니다”라고 했다. 도토리만큼이나 도토리거위벌레에 대한 관심도 적다.

“수천 그루 나무로 울창한 숲도 한 톨 도토리에서 비롯된다.” 미국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1803∼82년)이 말한 도토리 한 톨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면 숲의 가치 또한 모르는 것이다. 도토리는 줄고 있지만, 도토리를 아는 이는 극히 드물다.

공주=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